2019 남미

눈을 뗄 수 없는 경이로움, 마추픽추

Sapientia373 2019. 7. 23. 00:29

마추픽추를 실제로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여기 사진발 참 안 받는구나"였습니다. 네, 마추픽추는 실제로 봐야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 수 있어요. 유적도 유적이지만 뒷 배경인 산과 함께 봐야 그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데, 사진으로 담기엔 아무래도 한계가 있습니다. 다 둘러보는 데 두 시간이면 충분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는 아닐 수 있으나 (와이나 픽추 등반 제외) 시간이 허락해 준다면 정말 하루 종일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마추픽추는 해발 2400m 정도에 위치한 공중도시죠. 네, 쿠스코보다 지대가 낮습니다. 쿠스코가 얼마나 높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쿠스코에서 고산병으로 힘들어하던 사람들도 마추픽추에서는 보통 제 컨디션을 회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2400m 정도가 높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반도에서 제일 높은 백두산이 2700m, 한라산이 2000이 채 안 되는 것을 보면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산 아래에서는 볼 수 없는 도시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도시라고도 불리는데, 정말로 바로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성벽이 하나의 바위처럼 보여서 도저히 돌로 쌓은 건축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덕분에 20세기 초에 정식으로 발견되기 전까지 지역 전설처럼 내려온 도시가 됐습니다. 현대의 기술로 건축물들이 세워진 시기를 역추적하면 약간 중구난방이라, 원래 있던 구조물을 잉카인들이 개보수하여 지금의 마추픽추로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하네요. 

아구아스 칼리엔티스에 도착했다고 해서 마추픽추에 다 온 것이 아닙니다. 가파른 산을 타고 올라가거나, 관광지답게 셔틀버스라는 옵션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셔틀버스도 상당히 오래 타고, 내려올 때 길이 너무 가팔라 도대체 높이가 얼마나 되지 하고 검색해보니 보니 대략 400m 위에 있네요. 400m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구글이 말하길 뉴욕의 Empire State building 꼭대기 층까지 380m 정도 된다고 합니다. 네, 별거 아니죠? ㅎㅎㅎㅎㅎ 그 옛날에 이렇게 높은 데에 어떻게 돌을 운반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지, 정말 과연 신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갈만합니다. 

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올라갈 때는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너무 무리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거니와 전날 잠을 잘 못 자서 좀 피곤한 상태였거든요.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잠을 제대로 자질 못했는데, 아무래도 새로운 곳에 있다는 긴장감+호스텔의 불편함이 겹쳐서 불면증이 도진 것 같은 기분입니다.  버스는 편도가 13 USD라는 역시나 꽤나 무시무시한 가격이지만, 체력이 보통 이하이신 분들은 올라갈 때만이라도 버스를 타시길 반드시 추천드립니다. 남미 여행을 한다면 꽤 장기적으로 여행을 하는데, 괜히 "이쯤이야~" 하면서 힘 낭비하지 말고.. 우리 모두 가능할 경우엔 자본주의의 미덕인 소비를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페루도 먹고살아야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아무래도 가격이 제법 나가다보니 버스 안에는 남미 출신들보다는 미국인, 유럽인, 한국인(!!)이 엄청 많았다.

저는 운이 좋게도 버스 줄이 긴 편은 아니었지만 길 때는 정말 100m가량 줄을 선다고 하네요. 물론 버스가 많으니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대략 30분 정도 구불구불된 산길을 오르면 마추픽추 입구에 내려줍니다. 저는 전날 묵은 호스텔을 절대 믿을 수가 없어서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버스에 탔습니다. 버스 타기 전에도 짐을 맡기는 데가 몇 군데 있었는데, 우왕좌왕하고 버스를 타는데 집중하느라 짐을 맡길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무거워서 어떡하지라며 버스에서 걱정하는데 매표소 아래쪽으로 짐 보관소가 있었고, 보관비도 한화로 5000원 정도였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이었으면 20000원 받았을 거예요. 절대 페루 내에서 싼 가격은 아니지만, 원체 물가가 싸다 보니 바가지를 씌워봤자더군요. (애초에 이건 바가지가 아닙니다. 철저하게 수요 공급에 의해 결정된 가격. 바가지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를 때에난 쓰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15 솔에 짐을 맡기고 편~안 하게 관광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보이는 풍경


입구를 지나서 원래 가이드를 만나기로 했었지만, 전날 딱히 가이드가 맘에 들지도 않았고, 영어도 좀 허접했고, 그래서 그냥 혼자 다니기로 했습니다. 다니다 보면 소규모로 투어가이드를 따라다니는 관광객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조금씩 따라다니며 가이드가 하는 말을 옆에서 주워들으며 다녀도 괜찮더군요. 그리고 눈 앞에 풍경을 마주한 순간, 와, 그냥 가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밑에서 봐도 멋있던 산이 위에서 보니 진짜 절경입니다. 어휘력과 표현력이 부족해서 묘사력이 딸리는 제가 정말 미울 정도로, 이건 직접 보셔야 그 맛을 알 수 있습니다. 산을 제법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안데스의 산은 한국의 산과는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일단 산은 험해야 멋있긴 한가 봅니다. 물론 직접 트레킹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겠으나, 보기엔 산세가 험한 게 산등성이와 골짜기가 제대로 보여서 더 멋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우리가 마추픽추를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보는 사진은 100이면 90은 망지기의 집에서 찍은, 마추픽추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망지기의 집까지 올라가기 전에도, 입구가 중간보다는 약간 위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마추픽추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모습이 젤 먼저 눈에 띕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말하자면 마추픽추는 아래에서 위를 바라봤을 때 그 참맛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사진으로는 잘 못 봐서 제가 눈으로 처음 보는 장면이기도 했고, 이것이 산 아래에서는 그냥 돌멩이로 보이는구나라는 생각으로 더 자세히 보기도 했습니다. 또 사람들이 망지기의 집 뷰포인트에는 너무나 많이 몰려 있어서 약간 눈치 보며 풍경을 감상해야 하는데 반해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볼 때에는 뷰포인트가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곳이 뷰포인트가 됩니다. 너무 멋있어서 걷는 내내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드는 생각일지도 몰라요.

입구를 지나서 죽 걷다 보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위로 올라가서 망지기의 집을 보는 길(코스 1)과 아래로 내려가는 길 (코스 2). 망지기의 집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대충 마추픽추를 내려다볼 수 있는 데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저는 코스 2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반드시 코스 1부터 가셔야 합니다. 마추픽추는 일방통행이라 한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올 수 없는 구조더군요. 올라가려고 그러면 직원들이 엄청나게 스페인어로 뭐라고 합니다.  걷다 보니 출구라서 급 당황해서 돌아가려고 했지만 직원들이 나가라고 그러더라고요.. ㅜㅜ 다행히 4시간이 지나지 않아 재입장이 가능했지만 너무나 조마조마했습니다. 입장권이야 다시 사면되지만, 자리가 없을 수도 있었거든요. 결과적으로 굉장히 한산할 때 마추픽추의 아래를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꼭 위부터 봐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포스팅을 하려고 사진을 쭉 훑어보지만 앞서 말했듯 마추픽추는 참 사진이 별로입니다. 실제로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오고 눈을 떼지 못하는 신비로움이 있는 곳인데, 사진발이 너무나 안 받는 곳이라 아쉽네요. 사진으로는 험한 산에 둘러싸여 있는 성곽의 모습이 예쁘게 담기지 않아서인가 봅니다. 

위부터 아래로 내려가면 신전-귀족, 지배층 집-평민 집-창고 순서로 마을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500년이 지났음에도 마추픽추의 수로는 여전히 잘 작동 중이고 보수공사도 거의 하지 않을 만큼 벽들도 여전히 견고하게 성곽을 지키고 있습니다. 쿠스코에서도 느꼈지만 가히 마추픽추는 잉카인들의 기술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추픽추는 모든 곳이 정말 사진 스폿입니다. 혼자 간 것이 너무 아쉬웠어요. 속으로 "아 여기서 사진 찍으면 진짜 이쁘게 나올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약간 한산한 줄 알았다면 삼각대를 챙겨 오는 건데. 저는 맨날 무겁게 갖고 다니다가 정작 중요한 순간엔 놓고 오고는 합니다. 멍청하게도 백팩에 무겁게 짊어지고 온 다음에 백팩을 통째로 물품 보관소에 맡긴 것 있죠? 

혼자 마추픽추를 걷다 보면 여행 시작과 동시에 계속 저를 괴롭혔던 잡다한 생각에서 약간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일단 남미에 온 지 3일 만에 진정한 관광다운 관광을 시작하니 "아 이게 남미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리서치를 두고 여기까지 온 죄책감, 3년 차 겨울에 이래도 되나라는 걱정, 여행 중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걱정 같은 것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여행을 오긴 온 것. 이왕 온 것 너무 걱정하지 말고 즐기자. 그리고 나쁜 생각을 하기에는 산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저번 학기 내내 우울했던 기분이 약간은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록, 지금 되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자. 그렇게 돌고 돌고 돌다 보면 어딘가엔 가 있겠지. 

내려가는 길은 등산로를 이용했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가팔라서 내려가는 것조차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올라가는 것 마저 걸어갔다면 시간 내로 절대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중간중간 올라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남았냐고 묻길래 언제나처럼, You're almost there! Do not give up!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전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제 박사과정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사실 많이 남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또 최면을 걸 듯이 거의 다 왔다고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게 하는 것. 사실 저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 대충은 알고 있으니깐요. 제 프로그램은 5년이 기본인데, 아직 2년 반밖에 하지 않았으니, 앞으로 지금까지 한 것만큼은 더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니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저 앞에서 손을 뻗으며 "You're almost here! Come here"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지금보다는 덜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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