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Novel

82년생 김지영

Sapientia373 2017. 9. 1. 13:18

김지영은 나보다 꼭 10살 많다. 나는 이 책을 알라딘 전자책 미리보기로 보았다가 구매한 뒤 2시간만에 다 읽었다.

200페이지가 안되는 짧은 책. 그러나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진부한 이야기다. 너무 진부해서 더 짜증나고, 울컥하고, 아픈 그런 이야기. 내 주변에 어딘가에 있을 법 하고 내 미래일 것 같기도 한 그런 이야기.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법한 그런 이야기. 


김지영은 누구보다도 더 일하고 싶어했고, 능력도 있었고,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별당했고 약간의 반발심과 함께 체념한다. 전국의 페미니스트들이 들으면 반발하겠지만 차별을 받고 출산과 육아로 인해 직업을 관둔 모든 여자들이 이런 것은 아닐것이다. 게중에는 정말 조금 덜 능력있고, 덜 책임감이 있으며 덜 열정적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으레 남자 관리자들은 여자들은 까다롭고 초과 근무도 싫어하며 이상한 일에 반발심도 많다고도 많이 얘기한다. 그러나 그 여자들을 덜 능력있고 덜 책임감 있으며 덜 열정적인 사람으로 만든 주체가 무엇일까. 정말 여자들이 사회생활을 하기엔 조금 더 부적합한 신체와 정신을 가지고 태어난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부모가, 학교가, 사회가 은연중에 "넌 여자니깐 그 정도면 돼" 라든지 "여자애가 왜 이렇게 드세" 라든지의 말로 우리를 꾹꾹 눌러버리는게 아닐까. 여자는 무능력해도 예쁘면 다 된다는 말로 우리의 자존심을 상처입히며 여자는 능력이든 외모든 둘 중 하나는 되어야 한다며 어중간한 능력과 미모를 가진 여자들을 주눅들게 만들고, 결혼하고 애 낳은 여자가 일하기 어렵게 사회를 조직해 놓고서는 출산과 동시에 퇴사하려는 여자들을 무책임하다고 욕하고. 대체 우리 사회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떻게, 어디서부터 고쳐야 여자라는 것을 장애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될까. 


나는 작년에 어떠한 일을 계기로 반드시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부터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 이름 석자를 버리면서 살아가지 않겠다고도 생각했다. 출산과 육아가 직장과 양립이 힘들다는 무수한 사례들과 일가정 양립은 둘째치고 그냥 신체적인 고통과 어려움에 대한 글만 봐도 움찔움찔 하지만, 그래도 결심을 했으니 낳아서 기르고 싶다. 생각하건대, 요즘 드는 생각은 결혼 하고 무자녀로 지낼 것과 아니면 그냥 결혼 없이 정자기증으로 아이만 낳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현명할까이다. 물론 사회적인 통념과 우리 부모님이 노발 대발할 것을 생각하면 망설임없이 전자지만, 어려서 철 없고 겪어 보지 못해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부모가 되는 그 신비하고 형언할 길 없어보이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조금 평범한 루트는 생각 안하냐고? 기대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내 아이 아빠에게, 오늘은 일찍 들어와서 애 좀 봐주면 내가 밀린 잔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나도 늦는 날인데 애기아빠가 먼저 퇴근해서 아이를 챙기지 않을까. 오늘은 나 대신 아이아빠가 학부모 총회에 가주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차라리 더 나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더 많이 들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