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두 번째 김연수 소설.
한 작가의 책을 한 권만 읽고는 호불호를 가리기 쉽지 않은데, 두 번째로 책을 읽으니 확실해졌다.
나는 김연수의 소설 스타일과는 좀 맞지 않는다.
첫 번째로 읽은 소설은 <사랑이라니, 선영아>. 내가 자진해서 읽은 것은 아니었고, 연애와 사랑과 성에 대한 수업을 한 번 들은 적 있는데 거기서 지정한 책 중 하나였다.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에 비해 짧아서 고른 책이었는데 (참고로 나중에 읽은 순수 박물관은 수작이다) 전체적인 평은 주제의식과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적인 메세지엔 깊이 공감하는 바이나 서사와 서술 방식이 나랑 잘 맞지 않는 느낌. 애초에 연애와 사랑이라는 범우주적인 재제를 가지고 소설을 쓰면서 서사에는 너무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사가 얼마나 중요한데 연애소설에서.
<원더보이>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고 국가가 민중들에게 희생과 복종을 강요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아버지를 잃은 뒤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 소년이 주인공인데, 정훈이 마음을 읽게 되면서 원더보이가 되고 (자꾸 원더보이라는 말이 아무런 설명 없이 나오는데, 분명 Wonder boy이겠지만, 이 말으 80년대에는 계속 쓰이던 말인지 궁금하다. 뭐 특별한 초능력--예를 들면 숟가락을 구부리는 능력같은 것--이 있는 사람을 원더보이, 원더걸로 불렀던 것일까.), 성장을 하게 되면서 그 능력을 잃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정훈은 사람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갖게 되지만 그걸로 뭔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 능력을 이용해 먹으려는 권대령과 이만기, 쌍둥이 남매와 달리 그는 그저 아버지를 잃은 것에 슬퍼하고, 능력이 생기면서 알게 된 어머니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중 데모와 고문으로 애인을 잃은 희선씨를 만나며 사랑에 빠지게 되고 소년에서 청년으로 약간의 성장을 하게 되는데, 나는 도대체가 희선씨가 분신을 하려는 이유와 그리고 그 마저도 갑자기 중단한 이유와 그게 소설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기가 어려웠다.
어두운 과거가 있는 여자와 마음을 읽으며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소년. 강토형 (희선씨)은 마치 정훈이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전이시킬 수 있으니 그 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서야 한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정훈은 감정을 읽을 수는 있으나 그것에 공감하는 능력은 전혀 없어 보였다. 공감이란, 단순히 감정과 생각에 대한 이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식에서도 오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고 해서 그 생각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어디에서 그 생각이 왔는지 알지 못하면 공감은 하기 힘들다.
솔직히 말해서 주제가 뭔지도 모르겠다. 나는 소설에서의 비유와 상징을 좋아하는 편인데, 무슨 말인지 알 지 못하게 서술하고 여러 서평과 후기를 읽어야만 비로소 아, 이렇게도 읽히기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소설은 싫어한다. 약간 현대 한국소설이 가진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게 중에 몇 개는 서사와 묘사, 그리고 감정 서술이 촘촘하게 되어 있어서 '읽는 맛'이라도 느껴지는 책이 있다. 그러나 김연수의 <원더 보이>는 그것조차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한글 소설을 읽고 싶다라는 내 의지가 없었으면, 반도 못 읽고 끝냈을 소설 (그렇게 길지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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