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Essay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Sapientia373 2017. 2. 16. 14:55


2015년 노벨상 수상작.

읽어보고 싶었던 에세이(라고 나는 칭하고 싶다). 


저자는 수백명의 사람을 인터뷰했고 그를 재구성하여 에세이를 썼다. 작품에 등장하는 수백명은 각각 수백가지의 이야기를 가졌으며 그 하나하나는 모두 특별하다. 저자가 계속해서 말하는데, 그녀는 전쟁의 승리를 찬양하고 전쟁 영웅의 신적인 묘사에 질릴대로 질려 있고 그녀만의 방법으로 실제로 전쟁이 어땠는가를 묘사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전쟁에 참여했던 여성들이 있다. 실제로 전선에 나와 싸우고, 투쟁하고,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승리에 이바지한 당당한 여성들. 


솔직히 책의 제목과 대략적인 설명만 봤을 때, 나는 전쟁에서 남겨진 여성들에 대한 기록일 줄 알았다. 

왜, 우리도 그런거 있지 않나? 6.25 때 남편과 아들이 전쟁에 징병되고, 남겨진 여성이 아내와 어머니로서 고되고 참혹한 삶을 살아가기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들. 

별거 아닌 살림살이를 팔아버리기도 하고, 작게 가판대나 노점에서 장사를 시작하거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삯바느질이든 살림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최대한 살아보겠다고 노력하는 그런 이야기들. 

너무나 진부하지만 너무나 슬프고 먹먹해지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소련군이 여성 부대를 운영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몇 명의 장교정도로 여성이 차출되기야 했겠지만, 사병으로 여성이 저렇게나 많이 참여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성이 입대를 자원했다는 것. 뻔히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15살도 안된 소녀가 부대로 달려가 나이를 속이면서까지 군대에 자원해 입병으로 입대했다는 사실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사회주의 국가를 칭송할 생각은 전혀 아니지만 나는 소련이 가지고 있었던 (혹은 아직도 있는) 모든 국민을 하나의 주체로 보는 그 관점은 좋아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개인은, 물론 대를 의한 소의 희생이라는 점에서 그 이데올로기의 타당성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성별을 넘어서서 국가를 위해 어떠한 기능을 해야하는 존재로 평가된다. 여기 나오는 여성들도 그렇다. 이 여성들은 모두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 죽음을 무릎쓰고 군대에 자원하여 국가를 위해 싸웠다. 여자라는 이유로 뒤로 숨지 않고, 나의 성별이나 지위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한 것이라고 나는 글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작가는 수 백의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경험을 적어 내려갔다. 마치 나에게 직접 말해주는 듯한 문체는 글의 집중력과 몰입도를 높인다. 또 3인칭이 아닌 1인층의 서술은 전쟁이 얼마나 끔찍했고 그러면서도 본인들에게 얼마나 강렬한 기억이었는지를 더 잘 알게 해준다. 저자는 서문에서 여성들의 전쟁을 기록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했다. 확실히 여성들은 전쟁 그 자체의 굵직한 스토리에 엮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남성의 경우는 본인의 이야기를 할 때 그 전쟁 자체의 서사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한다. 그 전투가 어디서 일어났고, 누구와의 전투였고, 우리가 이겼고, 이겼으면 어떤 작전으로 이겼고, 퇴각할 때 어떤 경로로 퇴각을 했으며.. 등등. 여성의 이야기에서는 그것보다는 좀 더 섬세한 감정 묘사가 이어진다. 전장에 가면서 느꼈던 감정. 어떤 감정으로 부대로 달려나가 입대를 자원했는지. 주변에 전우가 죽었을 때의 충격과 슬픔. 그들의 이야기에서 어디서 어떤 전투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굉장히 부수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그 당당하고 멋있어 보이는 여군들도 18살 소녀같은 면을 다 지니고 있었다. 몰래 숨어서 귀걸이를 낀다든지, 같이 있는 남자 군인들에게 보여주기 창피해서 추위를 뚫고 멀리까지 가서 옷에 있는 이를 털고 온다든지, 다 같이 버려진 염색약으로 눈썹에 물을 들인다든지. 전쟁이라는 그 큰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그 모습이 너무나 대견하고 대단했다. 원해서 왔지만, 모두가 간다길래 얼떨결에 같이 왔지만, 나는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을 걸 어떡해. 난 아직 15살 소녀인걸. 


그들이 이 이야기를 입 밖으로 잘 꺼내지 않은 것은 여성이 그들의 여성성에 반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너무 아프고 생경해서 차마 말을 꺼내고 싶지 않을 것일까. 그러나 그 들의 이야기는 남자들의 전쟁 이야기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남성이라고 그 전장에서 안 무서웠을리가 있나. 남성이라고 눈앞에서 전우의 머리통이 날아가는데 태연할 수 있을까. 그들은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를 영웅담으로 치장함으로써 전쟁의 상처와 고통을 잊으려는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청자의 입장은 다르다.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럽고, 잔인한지에 대한 어렴풋한 느낌만 갖게 되고 그들의 승리와 영웅적인 스토리만 기억에 남아 전쟁 자체에 대해 별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전쟁은, 이 세상의 모든 전쟁은, 종식되어야한다. 서로 죽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 이 순간에도 끝나지 않는 내전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모든 영혼을 위해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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