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Essay

Modern Romance: An Investigation, Aziz Ansari and Eric Klinenberg

Sapientia373 2019. 7. 6. 00:53

아지즈 안사리의 모던 로맨스. 

 

  이 책은 불행히도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지는 않은데, 굉장히 쉬운 구어체 영어로 쓰였으니 관심 있으면 한 번씩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젊은이들의 연애와 결혼이 기성세대와 어떻게 다른지로부터 출발한 책인데, 배경이 미국이다 보니 모든 것이 공감이 가지는 않지만 꽤나 통찰력이 있는 책이다. 결혼, 그리고 연애마저 선택이 된 세대에게 로맨스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게 한 책. 

  한 가지 의아했던 것은 우리가 한 사람에게 정착하길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저 많은 사람들 중 나와 더 맞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 때문이라고 하는데 결혼이나 정착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이 생각을 많이 하는지는 모르겠다. 저 생각보다는 "내가 이 사람과 영원히 살 수 있으려나? 이 사랑이 끝나면 어떡하지? 사실은 내가 결혼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인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지 않나? 

  아지즈가 (그리고 자꾸 존재를 까먹게 되는 에릭이) 얼마나 연애 경험이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연애의 가장 근본적인 결론에 대한 논의는 빠져있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것. 연애에서 한 명 한 명이 특별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엔 그놈이 그놈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물론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사람이 혹은 그 반대가 되는 사람도 있다. 장점이라고 생각되었던 부분이 나중에는 단점처럼 보이는 경우도 허다하고, 그 반대도 생각보다 많다. 연애를 어릴 때 많이 해보라고 하는 이유는 대부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연구하기 위해서이다. 많이 만나봐야 알 수 있다. 내가 어떤 특성을 장점이라 여기고, 어떤 것을 정말 못 참아하는지. 가령,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은 장점일 수 있겠지만 나에겐 그렇게까지 매력적인 장점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약속시간에 조금 늦는 것은 물론 단점이지만 어떤 사람에겐 그렇게까지 심각한 단점은 아닐 수 있다 (물론 계속 바람 맞히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중요한 것은 연애, 내가 어떤 것은 견딜 수 있고 어떤 것을 견딜 수 없는지 판단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들을 제공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껏 1-2년, 오래 만나봤자 5-6년 만나는 연애와 기본적으로 내 여생을 보내려는 사람을 결정하는 결혼이 같을 수가 있을까. 책에서도 정열적인 사랑의 유통기한은 기껏해야 2년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2년 정도 연애하고 결혼을 결정하는데, 2년동안 약간 콩깍지 씐 채로 본 사람은 장기적으론 영 아닐 수도 있다. 나의 가장 긴 연애는 2년 반이었고, 앞으로 만약 결혼을 한다고 한다면, 그 정도로 오래 만나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장기 연애를 해본 적도 없는데 결혼은 어떻게 하지? 내가 헤어졌을 때는 여전히 정열적인 사랑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정말 그 정열이 거의 완전히 사그라진 뒤의 연애와 사랑은 어떤 모습이지?라는 의문과 두려움이 있는 법. 

 

  그 밖에도 온라인 데이팅, 문자로 헤어지기, 섹스팅 등 현대 연애에서나 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꽤 오랫동안 얘기한다. 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도 문자로 헤어지는 것은 정말 최악 중의 최악으로 꼽히는데, 책에 의하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문자로 헤어짐을 통보하고 통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자와 메시지 앱이 가져다준 폐해는 사실 연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퇴사나 알바 그만두는 것을 문자로 통보하는 경우도 그간 얼마나 많이 봤는가. 사실 이제는 문자로라도 알려주는 것이 양반인 시대가 돼버렸다. 잠수라는 것은 옛날에도 있었겠지만, 요즘에는 일부로 잠수 타는 것이 아니라면 연락이 끊기는 것이 상당히 힘든 시대가 돼버렸다. 의도적으로 문자와 메시지를 무시하고, SNS 계정을 비활성화하거나 삭제하고. 

  

  연애가 아무리 선택이 되버린 시대가 되었다지만 인간은 여전히 성적인 동물이다. 성은 본능이기 때문에 끊어낼 수도 없고, 설사 고행과 수련으로 끊어버린다고 해도 평생에 걸쳐 싸워야만 한다. 요즘 사람들은 성은 포기하지 않고 연애는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썸만 타다가 끝내는 사람들이나, 관계 정의를 하지 않고 캐주얼하게 만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니깐. 본인의 선택이고, 상처 받지 않는다면 괜한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진짜 연애보다 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캐주얼한 관계를 1-2년 갖다 보면 어느 순간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정착과 안정적인 관계에 대한 욕구도 어쩌면 인간 본능이 아닌가 싶다. 아닌가. 인간 본성이란 그저 갖지 못한 것을 갖고자 하는 마음일 뿐일까? 

  결혼을 하지 못하게 하는 물리적 장애가 많은 시대에서 여전히 결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물론 전통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 보다는, 오히려 가장 로맨티스트들이 아닐까 싶다. 이 사람을 사랑해서. 앞으로 닥칠 어려움과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그래도, 이 사람과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열정적인 사랑은 언젠간 (가까운 미래에) 끝이 나겠지만, 그래도 내 여생의 파트너로 삼고 싶을 정도로 확신이 드는 사람이라서. 아, 이렇게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나, 결혼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