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회랑정 살인사건>
난 개인적으로 미스테리/추리 분야는 일본이 다른 모든 국가를 압도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출간물의 숫자부터, 어색하지 않은 번역투와 미스테리 장르내에서의 다양성이 한 몫하는 것 같다.
아무리 긴 소설도 읽는데 일주일 이상 걸린 것이 없다고 해야할까.
<회랑정 살인사건>또한 그러했다.
회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좀 고어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 말인데다가 ~정을 붙이는 것도 우리 말에는 흔치 않은 느낌이라 제목을 보고 별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아 그냥 어디선가 살인사건이 일어났구나. 보나마나 연쇄살인? 딱 이정도.
일본 추리소설을 아주 안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엄청난 팬은 아니라서, 어쩌다보니 히가시노의 추리소설 중에는 처음 읽는 소설이 되었다. 전작 중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직접 구매까지하며 읽었는데 너무나 건조하고 수평적인 문체가 거슬려 끝까지 읽지는 않았다. 당시의 나는 그 소소한 감동 코드에 딱히 관심도 없었을 때이고. 아무튼 또 다시 심심함에 ebook 도서관을 뒤적거리다가 바로 빌릴 수 있는 이 소설을 빌리기로 했다.
epub으로 읽었기 때문에 문서판으로 얼마나 길지는 감이 안온다. 그렇지만 내가 거의 3시간 내에 다 읽은 것으로 보아서는 200페이지가 약간 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전체적으로 책은 재미도 있었고, 몰입감도 좋았다. 반전도 생각보다는 신선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을 때는 거슬렸던 건조한 그의 문체도 추리소설에는 정말 안성맞춤이라고나 할까. 주인공 에리코의 처절하지만 차분한 감정을 묘사하는데 탁월한 문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소설을 읽으면 언제나 그렇듯, 등장인물 관계도가 약간 헷갈리긴 했지만 이 정도면 몇 번 들쳐보면 바로 정리가 될 정도였다. 아주 완성도 높고 치밀하고 흔히 말하는 손에서 땀을 쥐게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몰입감이 높고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맛은 있었다.
아무튼 재밌었다는 얘기. 공부하다가, 영어책을 굳이 억지로 읽다가, 논문 읽기에 지쳐서, 눈을 돌리기 딱 좋은 정도의 책이었다. 굳이 줄거리와 결말에 대해서는 쓰지 않겠다. 추리소설인데다가, 그런 건 네이버에 검색하면 바로 나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