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an Barnes, <The Only Story>
한국어로는 <연애의 기억>으로 번역되어 있는 줄리안 반스의 (유일한) 연애소설.
영어로 읽기 참 어려운 책이었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완독했다.
폴은 계속해서 사랑의 정의에 대해 묻는데, 거의 마지막에 내린 결론이 참 맘에 든다.
“Perhaps love could never be captured in a definition; it could only ever be captured in a story.”
소설에서 폴과 수전의 사랑은 굴곡지다. 소설이니까 당연한거겠지.
다른 블로그에서 서평을 몇개 읽었는데, 폴과 수전이 사랑에 빠진 것 자체가 자극적이며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평이 몇 있었다.
물론, 19살짜리 대학 신입생과 48세 중년 여성이 사랑에 빠질 확률은 없다고 봐야한다.
그렇지만 소설이라서 좀 더 자극적인 요소를 주기 위해 작가가 이런 설정을 부여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모든 사랑과 연애는 그 자체에서 특별함을 찾을 수 있는데, 때로는 그 특별함과 특이함이 겉으로 드러날 때가 있고 속을 들여다봐야만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 연애는 그저 전자에 불과하다.
나이 차이는 폴이 수전을 사랑하는데 있어 특별함을 증폭시키는 장치이고
수전이 결국에 그 사랑에 온전히 빠지지 못하는 하나의 단순한 이유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나이차이가 많기 때문에 이야기가 시작할 때부터 비극을 예측할 수 있다고나 할까? 음. 둘이 잘 이어지는 내용은 아니겠구나.
처음에는 플랏이 자극적이라고 생각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두 번째 챕터부터는 폴이 무너져내리는 수전을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약간은 지루하게 그려진다.
이해되지 않은 문장들도 제법 많았는데, 번역본에서도 당최 무슨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 좀 있는 것으로 보아, 파편화된 기억을 더듬으며 화자가 과거를 회상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 조금 말을 꼬아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경험상 영국 소설이 미국 소설보다는 읽기 어렵다)
그렇지만 중간 중간 폴이 사랑에 대해 고뇌하는 장면에서는 참 공감되는 문장들이 많았다.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는 모두 연인 관계에서 (짝사랑에서도) 수 없이 많은 고민을 하며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인다.
먼 미래에서 다시 돌이켜보면, 그 과정은 성장의 과정이고, 인생에서 꼭 필요한 고뇌이며 없는 것 보단 있는 것이 백번은 나은 과정이지만, 당시에는 휘몰아치는 감정의 파도와 바람에 꺾이고 부서지고 다치며 심한 경우에는 나 자신을 파괴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 과정도 전부 사랑이었음을, 그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감정과 사랑하는 감정이 같이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모두 다 알고 있다.
“And by that time he had made the most terrifying discovery of his life, one which probably cast a shadow over all his subsequent relationships: the realization that most love, even the most ardent and the most sincere, can, given the correct assault, curdle into a mixture of pity and anger.”
연애는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하는 동시에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 그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이별을겪고 나서도 다시 사랑을 하고, 다시 이별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겠지.
사랑에 빠지는 과정보다 사랑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그린 책이나 영화를 보면 내가 겪었던 이별을 다시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시간이 오래되어 빛이 바래긴 했지만, 그 때 느꼈던 감정들 중 아주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들이 몇 개 있다.
나는 한 번 밤새 울면서 그 사람과 헤어져야하는 이유와 헤어지지 말아야하는 이유에 대해 써 내려간 적이 있다.
개수로는 압도적으로 헤어져야하는 이유가 많았지만, 뭐라할까, 깊이와 중요성에서 헤어지지 말아야하는 이유가 항상 이기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고, 그 마저도 시원치 않았다.
내 연애는 남이 듣기에 수전과 폴의 연애에 비하면 특이한 것은 하나도 없는 정말 평범한 이야기다. 평범한 이유로 싸우고 울고 헤어지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내 Only Story가 아닐까 싶다.